설도의 흔적
우리 가곡으로 유명한 <동심초>(同心草)의 원작자는 1200년 전 중국 당나라 때의 여류시인 설도(薛濤: 768?-832?)이다.
동심초의 1,2절 가사가 같은 한시(漢詩)의 다른 번역(김억 선생이 전반부를 달리 번역했다는 의미. 아래 가사 참조)임은 필자의 책 ‘이정식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2011.5)에서 밝힌 바 있지만,
설도의 흔적을 찾아 중국 사천성 성도에 가게 된 것은 이 책을 출간한 두 달 후인 2011년 7월 하순이었다.
동심초(同心草)
설도 원작, 김억 번역, 김성태 작곡
1절: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2절: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길은 뜬 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시 원문:
風花日將老(풍화일장로)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不結同心人(불결동심인)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설도의 ‘춘망사’ 제 3수>
사천성에 간 원래 목적은 장족(티벳족)과 강족(챵족)이 주로 사는 사천성 서북쪽 ‘아바장족강족자치주’(동티벳으로도 불림)를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성도를 지나면서 설도의 흔적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작가, 동호인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는데 내게는 설도의 흔적 찾아 보는 일이 내심 더 중요했다.
설도의 자취가 남아있는 성도시내 망강루(望江樓) 공원에는 아바주에 다녀와 중국을 떠나기 전날인 7월 31일에야 갈 수 있었다.
<망강루 공원 옆을 흐르는 금강>
망강루 공원에는 설도가 좋아했다는 각종 대나무들이 입구부터 가득 들어차 있었다. 대나무의 종류만도 150종에 이른다고 했다. 공원에는 설도기념관, 설도상, 설도정(薛濤井), 설도의 묘, 죽(竹)문화 전시관, 그리고 공원의 이름이 된 망강루 등이 들어서 있다.
기념관 안에는 설도의 모습을 이런저런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놓았고, 설도가 교류했던 백거이(白居易), 유우석(劉禹錫), 원진(元[禾眞]), 두목(杜牧) 등 당대의 이름있는 문인들도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한쪽에는 설도가 원진을 향해 무언가를 써 보내는 듯한 내용의 그림도 그려져있다. 동심초의 원본이 된 춘망사(春望詞, 봄을 기다리는 노래)가 연하의 남성이었던 원진을 향한 설도의 연모의 정에서 쓰여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타내려는 것 같았다.
그림 속에 동심초로 번역된 춘망사 제 3수가 적혀있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아쉽게도 다음과 같은 춘망사 제 4수가 적혀있었다.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어찌할까 꽃 가득 핀 저 가지
翻作兩相思(번작양상사) 생각할수록 그리움만 가득하여라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눈물이 아침거울에 떨어지네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 ‘춘망사’ 제 4수 - (일반 번역)
그런데 김소월의 스승인 시인 김억(金億, 1896-1950?)은 여기에 ‘봄바람’이라고 제목을 붙여 다음과 같은 번역시를 그의 번역시집 <동심초>(1943년)에 실었다.
봄바람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가지마다 가득이 피인 꽃송이
飜作兩相思(번작양상사) 이 상사 풀길 없어 쉬는 긴한숨,
玉筋乘明鏡(옥근승명경) 거울속에 비최인 세인 이머리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휘도는 봄바람야 어이 알으리.
- 출전: 안서김억전집 (한국문학사, 1987) -
한시 원본과 달리 김억의 번역시집에는 제 4수 2행 ‘번작양상사’의 번(翻, 원본)이 번(飜)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채자(採字)과정에서의 실수로 빚어진 오자(誤字)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한 실수가 1980년대에 전집을 만들 때 생긴 것인지 번역시집 원본부터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3행도 안서김억전집엔 ‘옥근승명경(玉筋乘明鏡)’으로 나와 있다. 번역 내용도 본문과 전혀 다르다. 왜 한자가 그렇게 바뀌었는지 이유는 알길이 없다. 다만 설도의 원문대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한 듯 하다.
국학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순우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옥근(玉筋)은 ‘옥 젓가락처럼 흘러 내리는 눈물’이란 뜻의 옥저(玉箸) 혹은 글자의 형태가 비슷하게 생긴 옥저(玉筯: 앞의 옥저와 같은 뜻)의 채자상의 착오로 보이며 승(乘: 탈 승) 역시 수(垂:드리울 수, 떨어질 수)의 채자상의 실수로 보인다는 것. 또한 명경(明鏡:밝은 거울)은 조경(朝鏡:아침 거울)에 비해 멋스러움이 덜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실수를 감안하더라도 김억 선생이 3행을 ‘거울 속에 비최인 세인 이머리’라고 한 것은 지나친 비약이거나 창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주: 옥저(玉箸, 玉筯: 마치 옥으로 만든 젓가락처럼 흘러내리는 눈물. 삼국시대 위나라 문제(文帝)의 왕후인 견후(甄后)의 얼굴이 희었는데, 그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면 마치 옥저와 같았다는데서 유래된 말.)
아무튼 기념관 안 어디에도 설도의 <춘망사>중 제 3수가 한국에서 <동심초>라는 유명 가곡이 되어 지금도 널리 불리고 있다는 설명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인 가이드들 조차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했다. (글/사진: 이정식)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