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무드라의 노래!--펌
마하무드라의 노래!
# 1
스스로 피어난 지혜에게 절 하나이다.
마하무드라는 보여 질 수 없다.
그러나 스승에게 헌신하고
숱한 고행과 고통을 넘어온 나로빠
내 그대를 위해 이 가르침을 전하노니
축복받은 제자여,
가슴 깊이 간직하여라.
들어보게나.
세상의 본질은 신기루나 꿈과 같이 무상하여라.
신기루와 꿈은 존재하지 않나니
매이지 않는 삶을 가꾸며 세속적 행위를 버려라.
노예와 자식을 버려라.
탐욕과 분노의 원인인 것을…….
홀로 숲이나 한적한 곳에서 명상하라.
비(非)명상의 상태로 머물러라.
아무것도 얻을 것 없는 그것을 얻을 때
그것이 바로 마하무드라.
# 2
윤회의 법은 부질없이
탐욕과 분노를 일으킨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궁극의 실체를 찾아라.
마음의 법으로는 깨달은 마음의 법을 보지 못하고
행위의 법으로는 무위의 법을 알지 못한다.
# 3
초월의 마음과
무위(無爲)의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면
마음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벌거벗은 본성의 상태에 머물라.
마음의 투사를 억누르지 말고
다만 스스로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멎어지게 하라.
거부하는 마음도 받아들이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대, 마하무드라 안에서 자유롭게 되리라.
# 4
나무엔 숱한 가지와 잎이 돋아나나
그 뿌리를 잘라버리면
숱한 가지와 잎들도 시들고 만다.
이와 같이 마음의 뿌리를 잘라버린다면
모든 마음의 파도는 사라지리라.
오랜 영겁 동안 쌓여온 어둠도
등불 하나에 의해 쓰러지나니
칠흑 같은 까르마(業)의 베일은
일순간 자각의 불꽃에 타버린다네.
이를 이해치 못하는 이들은
의식을 모아 호흡을 지켜보라.
또한 눈의 관법(觀法)과 심법(心法)으로 그대 마음을 닦아
자연스럽게 머물지니…….
# 5
허공을 깨달으면
중심과 바깥이란 굳은 관념마저 풀어진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마음의 움직음 끝나고
무념(無念)의 상태에 머물게 되며
위없는 보리심을 깨닫게 되리라.
# 6
땅에서 솟아오른 수증기
구름이 되고 마침내 하늘로 사라지듯
구름이 어디로 가고 언제 사라지는지 알 수 없네.
사념의 물결도
마음이 마음을 깨달을 때
해체되리라.
# 7
허공은 빛깔도 형태도 없어라.
변하지 않으며
검고 흰 것에 물들지 않나니
이와 같이 빛의 마음은
빛깔도 형태도 없으면서
흑과 백, 선과 악에 물들지 않네.
# 8
수천 겁 내려온 어둠도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의 근원을
가리지 못하듯
기나긴 영겁의 윤회도
눈부시게 빛나는 마음의 근원을
적시지 못한다.
# 9
허공은 텅 비어 있다 하건만
어이 말로써 묘사할 수 있으랴?
마음이 빛난다 말하지만
이름붙임으로 마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으리.
이처럼 마하무드라는 머무름이 없어라.
# 10
변함없이 원초의 상태 속에
여유롭게 머물러 있으라.
반드시 그대의 속박에서 풀려나리라.
마음의 근원은 허공과 같아
만유(萬有)를 머금고 있다.
# 11
몸의 움직임을 느긋한 참됨 속으로 흐르게 하고
뜻없는 지껄임을 멈추어
그대 말의 메아리, 굽이치게 하라.
무심(無心)으로 살되
그대 자각을 독수리처럼 치솟게 하라.
# 12
몸은 텅 빈 대나무처럼 실체가 없네.
마음도 본래 허공과 같아
사념이 머물 자리가 없으니
그대 마음을 부드러이 머물게 하고
억누르지도 떠돌게도 하지 마라.
마음에 목표가 사라질 때
이것이 마하무드라,
이에 다다랐을 때 위없는 깨달음은 성취되리라.
# 13
마음의 본성은 감각의 대상 없이 빛나고 있나니
명상의 길이 없어질 때 붓다의 길은 발견되리라.
비(非)명상의 상태를 명상하면 절대의 보리를 깨달으리라.
이것이 지고의 통찰,
이는 대상에 대한 집착과 나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 있네.
이것이 최고의 명상.
여기에 헤매는 마음은 없어라.
이것이 황제의 행위.
아무런 노력도 바램도 두려움도 없을 때
그대는 이미 목적지에 이르렀네.
# 14
태어남 없는 알라야(Alaya ☆)는 습관과 베일이 없다.
태어나지 않는 근원에 마음을 두게 하고
명상과 비(非)명상의 구별을 짓지 마라
투사 속에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모두 소진시켰을 때
한계없이 드넓은 황제의 통찰에 도달하리라.
☆ 참고: 알라야(Alaya) ☆
불교 용어로써, <거주(居住)>를 의미한다.
<본질 속의 거주>, <본질적인 진공(眞空)>, <본질의 하늘>을 뜻한다.
# 15
지고의 명상은 경계 없이 심원하여라.
지고의 행위는 노력 없이 스스로 흘러나오네.
지고의 결실은 바램 없이 스스로 가득 차 오르네.
깨달음의 처음에는 격렬한 강과 같으며
중간에는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과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서는 아들과 어머니가 만나듯
모든 강줄기가 바다에서 하나로 모인다.
# 16
만트라(Mantra 眞言), 육바라밀, 계율, 종교를 따르는 이들은
경전과 교리에 얽매여
빛나는 마하무드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무심으로 살며
욕망이 없으며
절로 고요하며
스스로 존재하는 이 마음은
물의 흐름과 같아라.
# 17
빛을 가리는 것은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된 삼마야(Samaya 三昧)의 서원은
도그마의 관점으로 생각할 때 부서져버린다.
궁극의 상태를 벗어나서
지각하거나, 방황하거나,
머물지 않을 때
그대는 성스런 구도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욕망이 사라져 극단에 머물지 않을 때
그대는 모든 가르침의 달마(Dharma 法)를 보게 도리라.
이와 같은 노력 속에서 정진해 나가면
윤회의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리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명상한다면
어두운 까르마(業)의 베일은 사라지리라.
그러므로 그대를 <가르침의 등불>이라 하느니라.
# 18
이 가르침에 헌신하지 않는 무지한 자들도
그대로 하여
영원히 윤회의 강물에 빠져
허덕임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낮은 세계에서
가엾게도 이런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니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는
지혜로운 스승을 찾아야 한다.
스승의 축복 속에 녹아들어가
그의 마음은 영원히 해방되리니…….
# 19
카르마무드라를 찾으면
텅 빔과 기쁨의 합일에서 지혜가 솟아나리라.
신묘한 방편과 지혜의 결합은 축복을 가져다 주리라.
이를 끌어내려 만다라(Mandala)를 일으키도록 하라.
이를 온 몸으로 나누어보내라.
# 20
욕망이 끼어들지 않을 때
허공과 환희의 합일이 일어나리.
영생을 누리며
흰머리칼도 없이 만월처럼 가득 차게 되어
그대의 생명력은 완전해지리.
상대적인 신통력을 빨리 얻고 난 후에
절대적인 신통력을 얻어야 한다.
대하(大河) 같은 마하무드라의 노래가
행복한 존재들의 가슴에
영원히 흘러넘치기를…….
━━━━━━━━━━━━━━━자료출처━━━━━━━━━━━━━━━━━━
『마하무드라의 노래 (The Song of Mahamudra)』
틸로빠·頌 / 한바다·講義 / 양문·出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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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략) … …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여행할 마하무드라(Mahamudra)의 세계는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천년 전 인도에서 인간 정신의 최정점에 도달했던 틸로빠(Tilopa)라는 한 뜨거운 인간의 가슴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영혼을 일깨우는 가슴의 노래 마하무드라는 그 제자 나로빠(Naropa)를 거쳐 티벳 최고의 고승으로 일컬어지는
카규 맥(Kagu Lineage)의 마르빠(Marpa)와 그의 제자 밀라레빠(Milarepa)를 거쳐, 현대에 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나는 며칠 전 샴발라(Shambhala)라는 출판에서 영문으로 번역된 《나로빠의 일대기》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속에 이 《마하무드라의 노래》도 함께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번역해 보았습니다.
그 책의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인도에서는 이 노래가 완전히 사라졌고 티벳(Tibet)에 살아남아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틸로빠는 지고의 깨달음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이 일어나는 과정, 그리고 삶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일어나는
체험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아름다운 시(詩)의 형태를 빌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진 라즈니쉬가 강의한 《마하무드라의 노래》를 모두 감동적
으로 읽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로빠의 전기에 실린 이 《마하무드라의 노래》는 이제 읽어보시면
느끼시겠지만 국내에 소개된 내용과는 많이 다르고 또 원전(源典)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읽고 나서 전체의 흐름이 훨씬 명확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 판본을 가지고 강의하기로 하였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는 이 노래들에는 깨달음과 삶의 조화에 대한 보편적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마하무드라의 노래》는 깨달음을 완성한 틸로빠가 자신의 깊은 체험과 절실한 구도의 여정을 통해 깨우친 지혜를
나로빠의 영혼 속에 불어 넣어준 사랑의 노래입니다.
8세기경 나란타 불교대학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던 대승의 정신이 탄트라, 즉 금강승(金剛乘)을 통해 확산되었는데,
12세기경 이슬람군이 침입하여 당시 불교의 거점인 나란타 불교대학을 불태울 때, 이 대학의 문헌을 지키려던
수많은 고승과 학승들이 나란타 불교대학과 함께 타죽었습니다. 이에, 인도 불교는 역사의 장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이를 예견한 수많은 고승들은 금강승의 많은 밀법(密法)과 문헌들을 티벳인들에게 전수시켜 그 전통이 티벳(Tibet)에
흘러들어감으로써 자비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고승 중에 나란타 불교대학의 학장이었던 나로빠가
경전의 지식만으로는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계시를 통해 깨닫고 살아 있는 스승을 찾아 인도 전역을 헤매고
다니다, 틸로빠라는 야인과 만나 해탈의 심원한 뜻을 전수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틸로빠는 왕족 출신답지 않게 낮에는
깨를 갈아 팔고 밤에는 창녀들의 포주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모든 세인과 학자들에게까지
존경받던 당대 최고의 지성 나로빠가 한 이름없는 건달에게 배움을 청했을까요? 이것은 파격 중에서도 최고의 파격
입니다. 나로빠는 틸로빠에게서 나오는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과 순수한 가슴의 파장에 매료되었던 것이지요.
처음에 틸로빠의 가르침은 가혹할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나로빠는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때때로 수많은 번민과 외로움으로, 때로는 자기혐오에 빠져 목숨을 끊으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시련을
준 까닭은 허위의식으로 지친 그의 몸을 살려내고 오만과 편견에 닫혀 있던 그의 가슴을 소생시키는 틸로빠의 배려
에서 였습니다. 그 까르마(業)들이 다 떨어져 나갔을 때, 나로빠는 가장 심원한 해탈의 노래를 그의 가슴에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시에, 틸로빠는 지혜의 눈으로 이 위대한 깨달음의 흐름을 이어받을 인연이 눈의 나라 티벳
(Tibet)에 있음을 감지하였습니다. 때문에 머나먼 티벳의 한 위대한 영혼에게 법맥을 전해주어야 할 사명을 지닌
나로빠는 강하고 지혜로워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학자들처럼 앉아 명상을 하거나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 진정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을 때, 틸로빠는 그에게 죽음의 명상법,
영혼 이탈의 비밀, 몸과 미세한 심령 통로에 대한 비밀스런 지식, 아유르베다(Ayurveda ☆)의 변형인 영적 해부학과
탄트라 의학, 그리고 해탈의 밀지(密旨)인 마하무드라를 전했습니다. 이 법맥(法脈)은 나로빠를 거쳐 티벳의 마르빠
(Marpa)에게로, 다시 티벳 최고의 각자(覺者)였던 밀라레빠, 레충빠로 이어졌습니다. <카규파>로 불리는 이 흐름은,
처음으로 영국과 미국 등 서구에 불교를 전했던 보살 트롱빠에게로 이어져왔습니다.
☆ 아유르베다(Ayurveda) ☆
아유르(Ayur)는 생명을, 베다(Veda)는 과학을 뜻한다. 따라서 아유르베다의 뜻은 <생명 과학>이란 뜻이다.
인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민간의학을 말한다.
… … (중략) … … 이 노래의 당사자인 틸로빠와 나로빠가 속했던 탄트라, 금강승(金剛乘)은 불멸의 지혜를 전하는
깨달음의 한 흐름으로 8세기 전후로 불교가 귀족 취향으로 변해 민중의 삶과 유린되고 더 이상 싱싱한 혼의 자각을
일깨울 수 없게 되었을 때, 붓다의 실천적인 정신을 계승하여 대중들로부터 시작된 명상의 흐름이었습니다.
금강승(金剛乘), 즉 탄트라는 삶과 유리된 초월된 열반을 따로 설정하여 거기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 땅의 삶에 역동적으로 뛰어들어 깨달음을 완성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현실긍정주의)
그들은 이 땅이 바로 생명의 꽃이 피어나고 가꾸어져야 할 진리의 나라라는 사실을 직시했습니다.
금강승의 성자들(Tantrica)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긍정하여 자신을 활짝 열고 나아감으로써 자기가 발딛고
있는 환경, 나, 세계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일어나는 모든 것들━장애든 도움이든━을 깨달음의 디딤돌이 되도록
만드는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도의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잘
소화시켜 마침내 독수리처럼 날아올랐습니다.
탄트라의 성자(Tantrica)로는 목수, 승려, 대장장이, 학자, 사냥꾼, 주부, 창녀 등등 실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성향과 기질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열적이고 자비롭고, 또 어떤 이들은
게으르고……. 도무지 고정된 유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향과 일상생활을 명상의 도구로 변형시켜
삶을 완성시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그 가르침에 그만큼 보편성과
실천성이 강했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므로 그 방법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현실을 꾸려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호소력과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의 은총은 마치 꽃의 향기와 같습니다. 장미와 연꽃의 향기는 그것을 맡을 수 있는
모든 생명들의 공유 재산입니다. 마하무드라의 메세지 또한 그 어느 종교나 유파에 국한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간직할 자유의 빛입니다. 마하무드라는 모든 인간이 걸어가야 할 진리의 여정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하무드라!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이를 수 있는 가장 궁극의 경지입니다.
그대의 의식이 저 북극성처럼 높은 곳에 도달했을 때
너와 나의 모든 대립이 사라졌을 때
드러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내면의 하늘 그것입니다.
마하무드라의 노래!
이는 대양과 같은 자비의 노래입니다.
마하무드라는 헌신과 열림의 정점에 이른 제자의 가슴에
스승이 불어넣 주는 생명의 그윽한 숨결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선택한 것은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노래해 주면서 강물이 바다로 향하듯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깨달음을 전하는 깊은 사랑의 노래인 동시에 전체적인 삶의 완성을 제시해 주는 지혜의 교향곡입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심오한 세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경외로운 일입니다.
이 노래를 지어 자비와 진실의 흐름이 굽이치게 한 틸로빠와 그 법맥의 여러 스승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엎드려 절합니다.
1998 초가을 문턱에서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