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라다라 차크라와 스와디스타나 차크라
물라다라 차크라와 스와디스타나 차크라 오쇼라즈니쉬 / 좋은글/좋은책
2013.12.1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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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라다라차크라와 스와디스타나 차크라
물라다라 차크라란 무엇인가?
물라다라란 '기본', '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하자면 물라다라는 '성기'를 뜻한다.
삶의 중심점, 탄생의 중심점을 뜻한다.
우리는 물라다라를 통하여 이 세상에 왔다.
어머니의 물라다라와 아버지의 물라다라를 통하여 그대는 육체를 받았다.
다음의 차크라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자신의 거주처를 뜻한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죽음의 차크라이다.
죽음의 차크라에게 왜 자신의 거주처라는 의미가 주어졌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죽음 속에서 실지로 존재했었느냐.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 그 사진의 순수한 본질로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그대 자신이 죽음 속에서 무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육체는 죽는다.
육체는 물라다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죽을 때 몸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물라다라에 의해서 주어진 모든 것은 아아,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로 흡수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대에게 기계장치로서의 육체를 부여했다.
죽음 속에서 흔적도 없이 무너져 버릴 이 살덩이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누구에 의해서도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대 자신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만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예언자 아브라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나는 이미 있었다."
아브라함은 예수가 태어나기 3천년 전에 이미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육체에 한정시켜 생각해 본다면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예수가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아브라함보다 3천 년이나 뒤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아브라함보다 전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의 말뜻은 이런 것이 아니다.
그는 "나는.....이다"를, <순수한 본질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와디스타나란 이름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물라다라 차크라에 의해서 주어진 것만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저 영원으로부터 온 것은, 그대의 자각력은 그 누구도 결코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힌두의 성자들은 자각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그들은 이를 스와디스타나라 불렀다.
죽을 때 그때 비로소 그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명상 속에서 죽을 때 아아, 그때 비로소 그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가 죽을 때 그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이 죽을 때, 아아, 그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아, 죽음 그대 자신이 무엇이라는 것을, 본질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길이다.
옛날 인도에서는 구루(스승)를 <죽음>이라고 불렀다.
제자는 스승 속에서 죽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직 이 죽음을 통해서만이 그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쇼-
[출처] 물라다라 차크라와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작성자 향기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