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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김동수 2015. 10. 18. 22:21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
제인 로버츠 저/서민수 역 | 도솔 | 원서 : Seth speaks : the eternal validity of the soul | 발행일 : 2000년 07월20일


소개 : ≪육체가 없지만 나는 이 책을 쓴다≫는 세스라는 이름의 육체를 초월한 인격적 존재가 7년간 시인인 제인 로버츠를 통해 쓴 글이다. 스스로를 에너지 형태의 인격적 본질로 소개하는 그 존재는 시·공간을 초월한 다차원의 세계에 대해 새로운 영역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죽음 이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나의 전생과 내생은 우주 속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죽은 친지나 친구들과 만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존재의 숨겨진 의미와 무궁한 생명력 등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책은 우리의 직관적인 자아를 해방시켜 자신의 참된 잠재력을 깨닫고 현실을 창조하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알게 함으로써 육체의 현실을 다른 차원에서 체험하며 과거와 현재의 사물을 동시에 지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28p-133p
2장 영혼, 그 무궁한 아이디어 건축물에 대하여


10 사후 환경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사후 체험이 현재 삶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질감이나 이해하기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수면이나 꿈 상태에서는 사후 체험에서와 같은 차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모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깨어나면 기이하거나 혼란스럽게 느끼는데, 그 이유는 단지 현재의 발전 수준에서는 하나 이상의 환경을 의식적으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육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일관성 있고 의미 있고 창조적인 의식 상태로 존재하며 사후에 접하게 될 여러 가지 활동을 실행합니다. 즉 활동의 다른 차원으로 주의력의 초점을 돌리는 것입니다.

각성의식이 육체적인 일상생활의 줄거리를 기억하고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듯이 꿈꾸는 자아 역시 그간 겪어 온 꿈 활동의 주요 얼개를 기억합니다. 깨어 있는 삶이 지속성을 가지는 것처럼 잠자는 삶에서도 지속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일부분은 모든 꿈의 체험과 만남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삶이 환각이 아니듯 꿈 역시 환각이 아닙니다. 꿈꾸는 자아의 관점에서 보면 육체적 자아야말로 몽상가입니다. 일상적인 체험은 각성 자아가 꾸는 꿈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편견을 갖고 꿈꾸는 자아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실이야말로 실재이며 꿈의 현실은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꿈의 현실이야말로 여러분의 본성에 한층 가깝습니다. 꿈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꿈이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최면을 걸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깨어났을 때에는 밤 동안의 모험을 육체적인 관점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제한되고 왜곡된 현실관에 맞게 고치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런 현상이며 일상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데에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일종의 도전으로서 그것에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그 틀 안에서 여러분은 성장하고 발전하며 의식의 한계를 깨뜨려야 합니다. 자신이 각성 상태일 때보다 꿈 상태일 때 여러모로 더 창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꿈속에서 몸이 우주를 날며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모든 체험을 실제 사건이 아닌 상징으로 보고, 하늘을 나는 꿈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심리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여러분은 꿈을 꿀 때 가끔은 말 그대로 하늘을 납니다. 꿈 속에서는 육체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의식 상태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사후에 마주치게 될 상황을 꿈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죽은 친구나 친지와 대화를 나누고 과거를 다시 찾아간다든지 육체적으로 50년 전에 존재했던 옛 거리를 가보거나 시간이 정지된 상태에서 우주를 여행하고 안내자를 만나거나 교육을 받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거나 의미 있는 작업을 하며 환각에 빠질 수 있죠.

물질계에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의 현실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사후 현실에 익숙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꿈꾸는 자아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길입니다. 물론 그런 사전 준비에 시간이나 정력을 쏟고자 하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런 방법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렇게 한 사람은 사후의 현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수면중에 육신을 떠난 체험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은 표면의식의 기억이 육체 의식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수면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육체적인 삶에서 만났건 만나지 않았건 꿈속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수면 상태로는 오랫동안 친분을 나눈 동료라도 각성 상태에서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수 있습니다.

각성 상태에서의 노력이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듯 꿈속에서의 모험도 나름대로 다양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며 갖가지 성취로 이어집니다. 이런 활동은 사후에도 지속되죠. 육체적 삶을 움직이는 생명력, 힘, 삶, 창조성은 다른 차원에서 비롯됩니다. 바꾸어 말해 여러분은 꿈꾸는 자아가 육체적으로 자신을 투영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현재 여러분은 꿈꾸는 자아의 그림자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꿈꾸는 자아는 정체성의 모든 부분을 통합시키는 심리적인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꿈꾸는 자아의 심오한 본질은 최고로 발전된 의식만이 꿰뚫어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꿈꾸는 자아는 퍼스낼리티의 전체적인 정체성을 강력하게 통합시키는 측면입니다. 꿈꾸는 자아는 아주 생생한 체험을 하며 육체적인 퍼스낼리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풍요로운 퍼스낼리티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이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어른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는 어른으로서의 자질은 이미 여러분 안에 깃들여 있다고, 즉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자연스럽게 발달한 결과라고 이야기하겠죠.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물어 볼 것입니다.

'하지만 난 어떻게 되는 거죠? 난 어른이 되기 위해 죽어야 하나요? 난 변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의 내가 죽지 않고서 어른이 될 수는 없는 건가요?'

어떤 면에서 나는 지금 그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내적인 자아의 본질을 설명해 주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꿈속에서 의식할 수 있지만, 그것의 성숙함이나 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질과 능력은 마치 아이에게 어른의 자질이 내재되어 있듯 여러분에게 깃들여 있습니다. 꿈속에서 무엇보다도 육체 현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됩니다. 사후에 다음번 육체적 삶을 계획하는 것처럼 말이죠.

꿈속에서는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낮 시간에는 꿈속에서 터득한 문제 해결의 방식만 의삭하게 되며 꿈속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마치 사후에 다음번 목표를 세우듯이 말입니다.

이런 심리적인 구조를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알다시피 육체적 퍼스낼리티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이드, 잠재의식, 슈퍼에고 등 온갖 용어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 단어들은 육체적 퍼스낼리티를 구성하는 복잡한 심리 활동을 구분 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꿈꾸는 자아 역시 그 이상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육체의 현실이나 그에 대한 조작과 계획을, 또 다른 일부는 육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창조성과 성취의 심층적 수준을, 또 어떤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을, 또 다른 부분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퍼스낼리티의 보다 광범위한 요소를, 그 밖의 다른 부분은 참다운 다차원적 자아인 영혼의 지속적인 체험과 존재를 각각 담당합니다.

영혼은 육체를 창조합니다. 창조자는 자신의 창조물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육체와 육체적 삶을 만들었습니다. 영혼은 결코 여러분을 육체적 삶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하거나 감각적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내면의 여행을 통해 현재 여러분이 아는 삶의 중요성, 아름다움,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외적 차원의 충만한 즐거움과 발전은 경이로움과 열정을 갖고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내면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정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육체를 입은 상태에서 사후환경과 체험을 의식적으로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는 어떤 현실보다 실감이 나죠. 그런 탐구는 사후의 삶에 대한 우울한 선입관을 완전히 바꾸어 줄 것입니다. 선입관은 여러분의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것을 버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체의 현실에 상당히 만족한 상태라면 내면의 환경을 연구하는 데 훨씬 유익한 입장에 서 있는 셈입니다. 반면에 육체적 삶을 죄악시하거나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태도는 적합한 준비 자세가 아닙니다. 우울한 상태일 때는 밤에 모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깨어있건 잠들어 있건 우울한 체험을 불러들이기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내면의 체험으로 육체의 체험을 대체하고자 한다면 그런 날에는 탐구를 시작하지 마십시오.

지나치게 엄격하고 완고한 선악관을 갖고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의식적인 조작을 하는 데 필요한 이해력이 결여되어 있는 셈입니다. 가능한 한 정신적, 심리적, 영적으로 유연해야 하며, 새로운 사고에 가슴을 열고 일정한 조직이나 도그마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창조적인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새로운 상황을 수용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하죠. 동시에 있는 삶을 직시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육체 환경에서도 충분히 외향적인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죠. 내면에 대한 연구는 수동적인 칩거나 비겁한 은둔이 아닌 능동적인 탐구와 노력이 되어야 합니다.

육체적 삶에서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접할 수 있는 현실 영역에서 특정한 데이터, 즉 자신의 현실관에 따라 주의 깊게 선택된 자료를 지각합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인식 데이터를 창조하는 셈이죠.

스스로 모든 사람이 사악하다고 믿는다면 여러분 스스로 선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의 문을 완전히 닫아 버려 인간의 선함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항상 최악의 측면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도록 텔레파시를 보내며 스스로 그런 혐오감을 그들에게 투영합니다.

바꾸어 말해 여러분은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후체험과 꿈 체험, 유체 이탈 체험도 마찬가지죠. 성악설에 집착한다면 사악한 상태와 마주치게 되며, 악마를 믿는다면 그런 존재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의식이 육체를 벗어나면 커다란 자유를 누리게 되고 생각과 감정은 지체 없이 현실화됩니다. 그러므로 악마를 만나리라고 믿는다면 스스로 그런 사념체를 창조하게 되죠.

자신의 의식이 육체적 삶의 죄악에 집중되어 있다면 아직 내면의 탐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태에서도 자신이 만들어 낸 악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속한 사념체를 만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스로 악마를 믿지 않는다면 아무 해도 받지 않고 사후현상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사념체라면 그것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가 무엇인지 자문해 봄으로써 자기 학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죠. 사후에도 그와 동일한 환각에 빠져 영적 전투를 겪을 수 있습니다. 물론 좀더 깊이 이해한다면 그런 전투는 필요 없을 테지만 말이에요. 결국 여러분은 언제나 자신이 이해하는 수준에 따라 관념을 구체화시키고 문제나 딜레마를 풀게 마련입니다.


137p-138p
앞에서 언급한 다른 삶의 현실은 여러분의 차원과 공존하지만 각성의식 상태에서는 자각할 수 없습니다. 꿈속에서도 다른 상황을 지각할 수는 있으나, 대개는 일반적인 꿈 내용 속에 편입되어 아침이 되면 거의 잊혀지게 마련이죠.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유령이나 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수면중에 강력한 사념체를 만들어 내거나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유체 이탈을 했을 때 여러분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유령으로 보일 수 있죠.

수많은 종류의 인간이 있는 것처럼 수많은 종류의 유령과 요령(妖靈)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처럼 자신의 상황에 주의를 기울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육체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과 여러분의 주요한 차이점입니다. 요령에는 근심과 걱정에 빠져 있는 퍼스낼리티들에게서 나온 사념체도 포함되죠. 그들은 대개 창조자의 본래 체험에서 나타난 것과 똑같은 강박증을 표현합니다.

반복적으로 손을 씻어대는 편집증적인 여인의 정신 메커니즘은 특정 유형의 요령들을 한곳으로 반복해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그 경우 문제가 되는 행위는 반복적인 증상을 띠는 법입니다.

그런 퍼스낼리티들은 여러 이유에서 자신의 체험을 소화하지 못하며, 예외는 있지만 요령들 역시 정신적 장애를 겪는 퍼스낼리티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있죠. 이들은 퍼스낼리티의 완전한 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하튼 퍼스낼리티는 동일한 곳을 편집증적으로 찾는 동안 악몽을 꾸거나 같은 꿈을 계속 꾸는 듯한 상태에 빠집니다.  퍼스낼리티 자체는 안전하고 정상이지만 그중 일부분은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어 나가면서 그런 식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입니다.

요령 자체는 그다지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행동에 대한 여러분의 해석이 곤란을 야기할 수 있죠. 여러분 자신도 현실의 다른 차원에서는 종종 유령처럼 보입니다. 그곳에서는 허깨비 같은 여러분의 출현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신화의 근거가 되는데, 여러분 자신은 그런 현상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경우에 따라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령과 요령은 다른 존재에게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세계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듯 말이죠.

형상을 창조하는 생각과 감정, 욕망은 에너지로 만들어졌고 에너지를 소유합니다. 그것은 가능한 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중 육체적으로 물질화된 것만 알아보지만, 이미 이야기한 대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복체를 외부로 내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랄체 여행이나 자기 투사는 이와는 전혀 다른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은 자신의 세계보다 상대적으로 진보한 현실 속에서 아스트랄체 상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혼란스런 상태를 보고 금세 여러분을 알아볼 수 있죠. 이를테면 여러분은 현실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육체적 상태이거나 감정과 느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형상을 띠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실재성을 가집니다.

또한 어떤 곳에 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렬하다면 사람들에게 지각되든 안 되든, 스스로 의식하든 못하든 자신의 이미지를 그곳에 투사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육체 세상을 떠난 이들이나 아직 그 안에 있는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죠.


 
출처 : 세진 힐링 기공
글쓴이 : 김동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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