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케이시의 라이프 리딩에 --펌글
나는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에드거 케이시의 라이프 리딩에 나오는 대목이다.--펌글
미국에 태어난 어린 애가 늘 경기를 일으키고, 잠을 자~지~ 못하고 울부짖는 등 극한의 상태를 보여, 그 부모가 에드거 케이시를 찾아와서 상담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에드거 케이시는,
그 어린 애가, 유럽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진행된 도시에 대한 폭격과 무서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모를 잃고 방황하다가,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영혼이라는 말이었다. 영혼은 참혹한 죽음을 당한 후에도, 여전히 그 공포와 두려움, 고통을 떨치지 못하고, 악귀처럼 따라 붙는, 극한의 공포, 두려움 속에서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죽었음에도, 죽을 당시의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이 영혼을 쫒아 다니며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이다.(사후 세계에 대한 지식과 배움이 부족한 것도 한가지 이유인데, 이는 인간 사회의 잘못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생각해 보라. 우리가 군대 시절에 사격 훈련을 했는데, 그 당시 자동화 사격장이 고장이 나서, 직접 병사들이 표적지가 있는 곳으로 기어 들어가서, 사격 표지판을 들고 서 있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이 당시, 총알이 날라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말 그대로 흉흉하다. 쓩 쓩~~~ 휘~~~익…
이 총알이 날라오는 소리만 해도, 공포스럽다. 사실 총을 쏘고 훈련을 하는 입장이니까 그렇지, 실제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다. 총알이 빗발친다고 표현한다. 총알만 빗발쳐? 폭탄이 터지고, 하늘에서는 전폭기가 날라 다닌다. 일반적으로 전쟁 영화를 보면, 전쟁 영웅 람보가 나오는데, 이건 내가 볼 때 거의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
총알 날라오는 그 흉흉한 소리는 아마도, 장난에 불과할 것인데, 폭탄이 터지는 소리, 그 진동과 충격 파괴의 정도는 상상을 불허한다. 발칸포나 오리콘 포 같은 거대 총알 탄이 발사되는 광경을 보라, 총알 하나가 어른 팔뚝만 하다. 이게 1분에 수천발이 나가는 거다. 표적지를 보면, 아예 박살이 난다. 여기에 155mm 포탄 터지지, 슈류탄 터지지 박격포 터지지, 하늘에서 폭격하지… 이런 와중에 누가 람보가 될 수 있을까? 거짓말이다. 기관총만 해도, 총알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다.
어쨌든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와중에 어린 애들, 여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 것인지 감정 이입을 해 본다면, 너무도 불쌍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은, 죽음 후에도 영혼을 갈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어린 애로 죽게 되면, 어린 애로서의 자아, 핵심의식, 혼을 가지게 되므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것도 내가 보기엔, 영계에서 뭔가 잘못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일을 이렇게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영혼(정확하게 말하면 혼, 핵심의식, 자아)은 방황하게 할 것이다. 정신이 나간 듯이 몰려 오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어린 애의 영혼은 방황하다가, 이를 불쌍히 여긴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급히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피해 들어 갔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즉각적인 환생이라고 보인다.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들 영혼들을 마비시키고,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죽을 당시의 무서운 고통과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실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다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서 피난처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어났지만, 여전히 그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의 기억이 남아, 경기를 일으키고, 울부짖는다는 설명이다.
나는 도대체 영계가 뭐 하는 곳인지 극단적인 비판을 가하려 한다. 도대체 일을 왜 이 따위로 처리하는가? 거기에는 스승도 안내자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러한 삶을 예측하고 왔을 것인데, 그런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죽어야 했던 아이의 영혼을 구하지 못한 것도 이상하다. 도무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영계가 이렇게 허술한 곳인가? 나는 상당히 궁금증이 많다. 왜 그래 도대체?
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삶과 죽음, 그리고 영계의 차원과 영계에서의 삶의 회고 반성 그리고 배움 그리고 다시 환생하는 과정들은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들이 말하는 표준적 모범 규칙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데, 바로 이런 경우들일 것이며,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영계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이상하게 허술하게 운영되는 후진국 형 영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계에도 선진국이 있고, 후진국이 있는가?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멋도 모르는 얼~간~이들은 람보를 보고 영웅적 환상에 젖고, 전쟁이 아주 신나고 멋지고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된다는 식으로 상상하려 하지만, 전쟁은 무서운 재앙이며, 참혹한 공포와 두려움, 살육의 현장일 뿐이다.
한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런 경우가 바로, “죽음 후에도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6.25 당시에 참혹하게 학살 당한 사람들이 여전히 그들이 죽음을 당한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박령 상태로 그 당시의 공포와 고통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들이다.
내가 읽은 책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잘 정리되고 조직된 선진국 형 영계, 그리고 모범적인 삶과 죽음의 사이클들, 즉 사후, 갈 곳으로 바로 직행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단계적으로 잘 처리되는 영계에 대한 얘기들만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관점이 바로 지구 층면과 밀접하게 연관된 가장 낮은 아스트랄 차원, 지구층면의 아스트랄 영역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귀신, 유령, 지박령, 원령 혹은 물질적 경험을 계속 하고자 하는 악령들이 머무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 단계를 떠나면, 유계 幽界가 등장한다는데, 이 세계는 모든 면에서 지구 물질계와 거의 유사한 세계라는 것이다. 지구차원과 똑 같은 도시와 마을이 존재하고, 똑 같은 사회 구조가 유지된다고 한다. 인간이 되었던 존재들을 다시 영으로 환원시키는 역 과정의 일환이라는 관점이다.
즉, 인간적 자아로서의 혼, 현재의식, 핵심자아를 다시 본래의 영으로 돌리는 과정 중에 포함된 간이 역이라고 할 영역이다. 순식간에 영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 보인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육체적 죽음을 거친 사람들의 혼, 자아, 현재의식, 핵심자아는 다시 본래의 영으로 흡수 통합된다고 하는데,
이 단계부터가 진정한 영계 靈界라고 일컬어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구분이 생기는데, 일반적 영계로서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상계/중계/하계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지옥계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지옥 역시도, 상계/중계/하계로 나눠지는데,
맨 밑바닥으로 가게 되면, 우리 인간 사회에서 말해지고 있는 “전설과 설화 상의 끔찍한 지옥의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상도 하기 싫다.
어쨌든 일반적 영혼들은 일반 영계로 가게 될 것이며, 그 영계는 다시 상계 즉 상위 영계/ 중계, 중간 영계, 하계, 하위 영계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 기간 머문 후, 다시 지상 세계로 쫓겨난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물질계로의 윤회 환생이다.(기간은 보통 100년에서 1,000년 사이라고 한다)
물질계로의 윤회 환생이 완료된 영혼들은 다시 물질계로 돌아가지 않고, 이 단계 혹은 그 보다 높은 단계에서 계속 영계에서의 윤회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반적 영계의 과정을 완료한 영혼들은 그보다 높은 차원의 靈界로 승천해 가는데, 이게 바로 天界로 일컬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이 천계도 상천계와 하천계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천계란 아마도 靈界의 天國, 지복의 세계를 의미할 것이다.
이 단계가 요가난다의 스승, 스리유크테스와가 말한, 히라냐로카, 천계, 영계의 천국인지 여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 그러나 이 단계로 올라가려면,
“사람이 살아 생전에, 니르비갈파 사마디의 경지 혹은 사미갈파 사마디의 경지에 오른 상태의 고도로 높은 의식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도 있고 보면, 여기 올라가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天界를 지나 계속 상승해 가면, 신계 神界가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 “아라아트 아델사타”의 영역은 어디에 속할까? 아라아트 란 개념은 아마도 아라한 阿羅漢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고 보인다. 아라한이란, 모든 것을 깨우쳐 안 존재 그러나 해탈을 미룬 존재들로 알려져 있다. 보살의 개념이라고 할지, 그런 것 같다. 여기서 해탈이란, 현상계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구극 究極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지구 물질차원의 삶은 영혼에게 있어서, 극히 일부의 세계이자, 영역일 것 같다. 그들의 본래 고향은 여기가 아니라, 영계 靈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본질적 핵심인 영이 그 곳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 세계로 환생한 사람들은 영 靈의 아바타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혼 魂이다. 즉 현재자아, 핵심의식, 혼이라고 하는 관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