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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뇌 충전과 쿤달리니 각성

김동수 2015. 7. 30. 21:42

아날로그 뇌 충전과 쿤달리니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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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뇌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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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간의 능력 개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인간의 중추 신경을 이루는 뇌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서점에도 에 관한 책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뇌를 자극하는 전자기 제품들이 학습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신문광고를 요란하게들 하고 있다.

한편 정부에서도 21세기 미래 과학을 겨냥하여 뇌 연구 프로젝트를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과감히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대뇌 개발에 대한 노력은 이미 인류 역사를 통하여 태곳적부터 있어 왔던 것이다.

갓난아기의 머리 두개골은 완전히 봉합되어 있지 않고 열려 있다.

아기들이 숨을 쉴 때마다 머리 정수리 부위가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옛 사람들은 그곳을 가리켜 백회(百會, 몸의 백가지 기운이 모두 모이는 정점)또는 천문(天門, 하늘 기운과 통하는 문)이라고 불렀다.

또 앞이마에 양 눈썹이 만나는 가운데도 두개골이 열려 있는 틈새가 있다. 이 혈을 미간(眉間) 또는 제 3의 눈이 있는 곳이라고 불러왔다.

그 위로 12cm 위 이마 가운데 인당(人堂)이라는 혈이 있다. 바로 부처님 이마에 보석을 박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뇌의 앞부분의 아날로그 직류 전류가 강하게 흐르는 중심이 되고 그곳에서 머리 뒤쪽(옥침혈)으로 곧게 뻗어 수평으로 관통을 하게 된다.

여기에 앞서 말한 정수리(백회혈) 부분에서 수직으로 만나는 곳에 송과선이라는 호르몬 분비 기관(필자는 아날로그 파동 정보 전달의 중심기관으로 본다)이 있다.

인류의 정신 문화란 바로 이런 부위에 흐르는 기()(특히 아날로그 직류전류)를 어떻게 하면 활성화시키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대뇌의 전후와 상하의 모든 회로를 각성하여 궁극적으로는 좌()뇌와 우()뇌를 하나로 통합하는가? 어떻게 인간의 잠재능력을 무한히 개발하여 이른바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가?!

그런 방법들 가운데 우리에게는 대,소주천(,小周天)공부가 있어 왔다. 우리의 공부법은 대체로 스승과 제자를 통해 전승되어 온 관계로 내용의 기록이 잘 정리 보존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그나마 유사한 내용으로 잘 기록되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인도 요가에서 말하는 쿤달리니 각성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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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쿤달리니 각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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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란 말은 <감겨진>이란 뜻으로 우리 몸 안에 우주적 에너지가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이 감기어 엉치 부위에 잠복해 있다가 보다 강력한 생명력이 필요로 되는 어떤 삶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양쪽 등줄기를 타고서 머리 위로 올라와서 뱀의 두 눈에 불을 켜 우리의 의식 세계를 비추고 각성케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쿤달리니 각성이 잘되면 인간은 자신에게 잠재된 우주 에너지를 일깨워 전 우주에 충만해 있는 순수 의식인 시바(siva)와 합일(合一)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두뇌의 모든 부분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요가 이론에 따르면 두뇌는 열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중 10%는 활동하고 나머지 90%는 잠자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은 모두 10%에서 나온다. 활동하지 않는 90%는 두뇌의 앞부분에 있다. 왜 이 부분은 활동하지 않는가? 에너지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요가에서 볼 때 두뇌에서 활동적인 10% 부분은 이다핑갈라의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으나 나머지 90%의 잠자는 부분은 핑갈라밖에 없다는 것이다.

핑갈라는 생명력, 이다는 의식(마음) 에너지이다. 요가의 표현대로라면, 잠자는 90% 뇌 부위에는 생명체 에너지는 있으나 의식 에너지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요가의 에너지 구분을 디지털 회로와 아날로그 회로라는 표현으로 바꾸고 싶다.

디지털 회로에 불을 켜는 에너지(교류전류)핑갈라로 본다면 아날로그 회로에 불을 켜서 각성시키는 에너지(직류 전류)이다로 보려 한다. 따라서 두뇌 90%의 잠자는 부분에는 디지털 회로의 교류 전류는 많으나 아날로그 회로의 직류전류는 적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주 어려운 질문이 제기된다. 두뇌의 잠자는 부분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90%의 잠자는 부위에 어떻게 직류전류를 흐르도록 하여 아날로그 회로를 어떻게 각성시킬 것인가?!

우리가 어두운 방을 밝히려고 전등에 불을 켤 때 전등에 손을 댈 필요는 없다. 벽에 있는 스위치만 켜 주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뇌를 각성시키기 위해서 두뇌 자체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 차크라 또는 경락, 경혈에 있는 스위치만 켜면 된다.

따라서 경락이나 차크라에 충분한 기()를 공급해 주고 아날로그 회로를 깨워야 한다. 아날로그 회로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디지털 회로의 5감 신경을 넘어서거나 잠재워야 한다. 말초적인 5감 신경의 감각적 생활을 멀리하려고 금촉 수련이나 면벽 고행, 금욕 생활 등을 행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일관성 있게 호흡 조절과 기()수련, 요가, 종교적 수행 등을 행해 왔던 것이다.

그런 원리를 알면서도 그 수행 과정이 더디고 힘든 까닭에 알면서도 쉽게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 선조들이 실행하던 가장 쉽고 효율적인 참 방법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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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쿤달리니 각성에 대한 몇 가지 큰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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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쿤달리니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설명한 책의 저자인 스와미 나라야나난다(Swami Narayanananda)는 쿤달리니 경험을 쿤달리니 에너지의 부분적 상승과 완전한 상승으로 구분하였다.

부분적인 상승도 모든 종류의 신체적, 정신적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으나 쿤달리니가 머리 정수리 한 가운데로 완전히 상승해야만 신의 현시(realization) 혹은 해탈로 이끄는 진정한 추진력이 깨어날 것이고 원하는 의식의 진화를 가져온다. 오직 이렇게 된 뒤에야 신체-마음이 순수하고 지복한 깨달음과 기쁨의 상태로 초월할 수 있다.

쿤달리니 힘의 상승은 상이한 감각들과 경험들을 수반한다. 스와미 나라야나난다(1960)는 쿤달리니 증상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몸 속에서 불이 나는 듯이 뜨거움이 일어나는데 먼저 등을 따라서 일어난 다음에 온몸이 뜨거워진다.(체온을 재 보면 열은 없다)

쿤달리니가 등뼈 가운데의 (경락)도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수슘나(sushunmana)라고 부르며 때로는 고통이 수반된다. 이 고통과 다른 교란 현상들을 질병의 조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특히 강조하고 있다.

쿤달리니가 심장에 도달할 때 가슴이 두근거릴 수도 있다.

발가락에서부터 기어올라오는 감각을 느끼는데, 때로는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 기어오르는 감각은 개미가 몸에서 머리를 향해 천천히 기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뱀이 몸속에서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새가 이곳 저곳 깡충 깡충 뛰는 것 같기도 하고, 물고기가 고요한 물 속에서 화살처럼 돌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원숭이가 나뭇가지 끝에서 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증상들은 힌두교의 전통적인 경전들, 특히 요가와 탄트라의 경전들에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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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쿤달리니 현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풍부하게 실려 있는 자서전은 스와미 묵타난다(Swami Mukanauda, 1974)의 것이다. 그는 인도 시다(siddha) 전통의 달인으로서 수많은 서양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무의식적인 신체의 움직임들, 기묘한 자세로의 변형, 몸을 관통하는 에너지의 강력한 흐름, 특이한 호흡 양상들, 내부의 빛과 소리들, 무서운 환상들과 환청들(목소리들, 소리들), 그리고 다른 많은 초자연적인 신비한 현상들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어 그는 명상 중에 향수 냄새를 맡기도 하였고, 과즙을 맛보기도 하였으며, 지복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쾌한 부작용들도 있었다. “나의 몸은 뜨거워졌고, 나의 머리는 무거워졌다. 몸의 각각의 세포는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항문 주위가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 그는 그가 때때로 어떻게 성적 욕망에 의해 압도되었는지 언급했다. 생명력의 자극과 성적 에너지 사이의 관계는 모든 비전의 전승들, 특히 탄트라와 밀교에서 인식되어 왔다.

스와미 묵타난다의 쿤달리니 경험의 진보는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마침내 그가 그러한 모든 경험들을 넘어서서 완전한 평화와 평정을 영원히 이루게 되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쿤달리니 상승의 초기 단계에서 그는 자주 혼란 되었고 두려워했으며, 거친 신체 운동들이나 꼴사나운 자세들, 혹은 머릿속을 비추는 듯한 빛들을 조절할 수 없어 괴로웠다. 대부분의 순간마다 그는 자신이 미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고도 그는 초기의 어려움 들이 한번 극복된 다음에는 완전하게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심지어 다른 많은 사람들의 영적 탐색을 도와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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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쿤달리니의 자동적인 각성이 기록되어 있는 또 다른 자서전은 카시미르 지방의 행정관이었던 고피 크리슈나(Gopi Krishna, 1971)의 것이다 고피 크리슈나가 어린이였을 때 심령적 경험들을 겪었으나, 34세가 될 때까지는 어떤 종류의 신비한 경험들도 겪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년 동안 주기적으로 명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쿤달리니의 힘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는데 이것은 그의 삶을 급격히 바꾸었다.

그는 갑자기 폭포와 같은 큰소리가 나면서 액상의 빛줄기가 척추 신경을 통해 두뇌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빛무리로 둘러싸였다. 뒤이어 공포, 피로감 그리고 무감각들이 뒤따랐다. 수시로 입안은 썼고, 목구멍은 타는 듯했으며, 온몸이 수없이 많은 뜨거운 핀으로 꿰뚫리는 듯한 것을 자주 느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중에는 자신의 주위에서 불그스레한 빛이 나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척추에서 매우 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쿤달리니가 잘못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자신이 미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고 한다.

일단 쿤달리니 과정이 시작된 다음에는 고피 크리슈나는 전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신체적인 균형과 평정의 상태를 이루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다. 그러나 활발한 쿤달리니가 일단 안정된 다음에는 이것이 초자연적인 정신적 재능들, 창조성, 그리고 모든 종류의 신비한 경험들을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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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에 내재된 신(), 우주 의식, 하늘 생명을 일깨워 그것과 하나가 되는 길 ; 쿤달리니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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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대소주천) 현상들은 책 앞부분에서 필자의 체험을 많이 서술한 바 있다.

쿤달리니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쿤달리니는 인간의 아날로그 생명 정보 전달 체계를 활성화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고귀한 내면의 생명력을 깨우쳐서 자신을 잘 알게 되고 전 우주와 자신이 하나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내천(人乃天) 또는 신인합일(神人合一) 이나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이 이런 체험과 깨달음의 결과이다.

또한 우주 의식과 하나로 연결된 개인의 의식 속으로 많은 우주적 정보가 영감이나 계시의 형태로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고대의 성현들, 선지자, 철학자, 뉴톤,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영감이나 계시는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단지 그들에게는 그것이 의식 차원으로 드러났지만 우리의 의식 차원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이 천재와 범인의 차이다.

이른바 천재란 두뇌의 잠자는 부분 중 한 두 군데가 각성된 사람이다. 천재적인 번뜩임이 있는 사람은 두뇌의 어떤 한 부분이 순간적으로 깨어나는 사람이다. 신동, 위대한 음악가, 시인, 예언가 등 각 분야의 천재에게는 부분적인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인 각성은 아니다. 두뇌 전체가 깨어나면 신의 아들, 신성의 화신(化身)이 된다고 쿤달리니 요가에서는 말한다. 또한 그에 상응하는 강한 생명력으로 치유 에너지나 초능력이 생기게도 된다.

쿤달리니 수련이나 아날로그 뇌회로를 각성시키는 목적은 초능력을 얻는다기보다 무의식 속의 잠재된 많은 정보를 표면 의식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인간은 생명이 잘되는 길, 즉 생명 치유와 영육의 거듭나는 길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고피 크리슈나의 쿤달리니에 대한 아래와 같은 견해에 필자는 동의하고 싶다.

(쿤달리니 각성이란 이른바 모든 영적, 심령적 현상들의 근본 원인이고, 인간의 진화와 발전의 생물학적인 기반이며, 비전적(秘傳的)이고 신비적인 고대 학문, 종교, 의술의 근원이다. 또한 창조의 신비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며, 철학, 예술, 그리고 과학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종교적 신앙의 근원적인 원동력이다.(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