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달리니 각성과 영적인 길의 기초---펌
제임스만 저/김현철 번역
이 페이지에서는 빛과 소리 뇌파명상기(마인드머신) 사용자와
사이버 명상음악 자료실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특정한 빛과 소리 자극을 사용하여
어떻게 깊은 무시간 상태의 창조와 쿤달리니 효과에 대한 제임스만의
자서전적 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임스 만에 관하여
1969년 봄 15-16세 때 최초 쿤달리니 각성 이후, 빛과 소리 마인드머신을
사용하여 또다시 각성한다.
그 계기로 인하여 그는 쿤달리니의 허와 실 그리고 영적인 길을 탐구하는데
많은 삶을 보냈다.
제임스 만은 쿤달리니 각성을 7번 경험했으며, 1992년 그는 마음의 자연적이고
변형된 상태(특히 유체이탈과 쿤달리니 각성에 관한)를 창조하기 위한
세션이론과 세션구조 그리고 빛과 소리 세션을 사용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한
어웨이킹 마인드1을 썼다.
어웨이킹 마인드1은 그의 수년간의 연구 결과이며 변성의식 상태에 대한
빛과 소리 세션은 쿤달리니에 대한 그의 열정이 담겨있다.
어웨이킹 마인드1은 판매용 서적이 아니며 현재 출판 준비 중이다.
그리고 그는 현재 어웨이킹 마인드2를 집필하고 있는 데,
더 진보된 유체이탈 세션, 인티그레이션(마음의 정화와 융합), 텔레파시,
그리고 마음의 빛에 관한 세션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나 붓다와 같은 어떤 영적 스승(어둠의 해방자)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쿤달리니를 연구하고, 이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의 지표라고 말했다.
로버트 먼로가 바이놀비트 소리원리를 유체이탈에 적용한 최초의 사람인 것처럼,
제임스 만은 2개의 바이놀비트(듀얼바이놀비트)를 사용하여 쿤달리니 이론을
창조한 최초의 사람이다.
또한 그는 빛과 소리 기기 산업 분야에서 쿤달리니와 유체이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소개
수세기 전 희미한 시간의 회랑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시아 종교들은 쿤달리니라고
불리우는 신비한 힘을 말해왔다.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방법, 그것이 어떤 경험을 만들어 내는지, 그리고
그것이 각성 된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동양의 영적 스승들
사이에서 은밀히 비전(秘傳)되어 왔다.
영적 스승들이 이 힘에 대한 지식을 비밀리 전수하는 데에는 매우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이 에너지로 인하여 수행자 자신의 존재를 파괴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이 자전적 체험 글은 쿤달리니 각성을 통한 나의 체험에 근거해 영적인 통찰을
기록한 것이다.
쿤달리니에 대한 관심 증가 그리고 쿤달리니를 각성시킬 수 있는 빛과 소리
명상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졌기 때문에 이 글은 보편적인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나의 저서 “어웨이킹 마인드1” 에서
빛과 소리 마인드 머신의 “해탈(enlightenment)” 세션에 대해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쿤달리니
동양종교에서 쿤달리니는 인간의 척추 끝에 감겨 누어있다고 말하는 어떤
강력한 에너지이다.
쿤달리니가 척추 위로 상승될 때 그것은 *따뜻한 마그네틱 액체 에너지(1)와
같이 느껴진다.
한번 각성 되면, 그것이 척추 안에서 점진적으로 상승한 후 (오직 나중에 다시
상승하기 위해서만)서서히 가라 앉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매번 그것은 상승하고, 척추위로 더 멀리 상승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두뇌에 도달할 때까지 상승과 하강을 지속하게 된다.
전 과정이 완벽하게 될 때까지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 단번에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 역주:
초기 요가 경전과 요가 수트라에서는 쿤달리니와 차크라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확실히 이 개념은 최근 요가 수행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만은 분명하다.
제임스만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험자들이 쿤달리니 에너지에 대한 지각을
마치 마그네틱 액체 에너지(이는 많은 SF영화, 테미네이터에서 보는 마그네틱
액체 인간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또는 수은과 같은 빛의 유동체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쿤달리니 에너지가 어떻게 지각되는가에 대한 많은 이견들이 있다.
많은 요가 경전에 의하면 쿤달리니 에너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생기(生氣)는 플러스 전하를 가지고 신체 속으로 퍼지는데, 의지력으로
신체 속의 마이너스 전하를 생기의 주위에 모이게 함으로써 거기에 정묘한 빛이
생기고 그 빛으로 신체 내부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빛이 쿤달리니이다.
2) 신체 하부에서 활동하는 아파나 기와 상부에서 활동하는 프라나 기가 의지에
의해 결합되면 거기에서 정묘한 빛이 생기는데 이것이 쿤달리니이다.
3) 신체 속의 정묘한 소리에 집중할 때 수행자는 쿤달리니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되어 복부 중심에서부터 생기는 파라(Para)음이다.
4) 신지학에서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대우주의 전기에너지라고 하였다.
카타 우파니샤드에서는 나치케타 불과 같은 것으로 묘사되고, 이 불을 얻은
수행자는 나치케타와 같은 영웅이 된다.
그런 영웅이 되면 수행자는 생사의 바다를 건널 수가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쿤달리니 에너지의 *상승효과(2)는 매우 많다.
이런 효과 모두는 쿤달리니 각성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만 그 혜택이 있다.
설사 독자들이 쿤달리니를 통해서 얻게 되는 몇 가지 경험가치(qualities)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될지 몰라도, 이런 효과들을 위해서 수행자들은 수 세대를
걸쳐 쿤달리니 에너지를 상승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왔다는 것이다.
** 역주:
이 글에서 제임스만은 쿤달리니 효과를 해탈과 동등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쿤달리니 상승효과에 대한 많은 이견들이 있다.
쿤달리니가 해탈에 대해서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Kashmir Shaivism의
많은 문헌과 기타 힌두 탄트라 문헌에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하타요가와 Nath Sampradaya의 문헌, 그리고 많은 불교 탄트라
수행에서도 유사한 견해가 발견된다.
이 견해는 최근의 영적 인물들- 슈리 라마크리슈나, 스와미 시바난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그리고 스와미 비베카난다, 그리고 현재 쿤달리니 요기 들에
의해서 주장된다.
이와 같은 견해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에너지 센터(물라드하르 차크라)에서
쿤달리니 상승은 속세에 더욱 집착시키는 힘이 된다는 주장이 있으며,
해탈은 인식의 변형이지 어떤 경험의 결과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쿤달리니와 무관하게 수행되는 명상, 즉 불교의 선과 위빠싸나와 같은
영적 선생들은 이것은 해탈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자의 개인적인 의견은 쿤달리니 상승은 해탈의 직접적인 효과 보다
더 간접적인 상태를 활성화 시켜주는 것 같다.
쿤달리니의 가장 기본적인 효과 중의 하나가 생리적인 상태변화를 일정 기간
동안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이 상태변화가 무상삼매까지는 아닐지라도 유상삼매의 최종점까지 이끌 수 있다.
쿤달리니 상승은 수행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큰 노력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깨어있든 아니면 수면 중이든 매우 깊은 삼매 상태에
머무를 수 있게 된다. ==> 삼매라기 보다는 고강도의 집중...
많은 요가 경전을 보면 유상삼매의 마지막 단계 또는 완벽한 제감(除感)
상태에서 무의식적 잠재인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는 마치 수면(수면은 의식의 각성만 제외하고 제감상태와 유사하다) 중
자연발생적으로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생각이 꿈으로 표현되듯이
완전한 제감이 되면 수행자의 주의력은 자신의 과거기억이나 더 오래된
인상(특히 억압된 욕구), 삼스카르에 모아지게 된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상승하면서 각 차크라의 바퀴를 회전시킬 때,
과거의 삶(전생까지 포함하여)의 잠재인상(삼스카라)들의 출현과 동시에
마음에 잠재되었던 어두운 과거의 인상, 마음의 상처, 슬픔 등이 정화되고
그치게 된다는 것이다.
쿤달리니의 위험성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 수행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서 자신의 카르마를 투시하고 이를 멈추게
할 수도 있는 반면에 이를 통해서 수행자 자신의 존재를 파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기 전에 반드시 수행자는 마음의 작용과
무의식적인 반응법칙 그리고 그것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한다.
1.지복:
쿤달리니의 상승은 극도로 지복한 상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섹스를 경험했을 것이다.
쿤달리니의 경험과 비교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경험은 섹스이다.
어떤 것이 섹스보다 더 좋은가 란 질문은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다.
쿤달리니는 섹스보다 약 100정도 더 강렬한 엑스타시를 동반하며
그것보다 휠씬 더 지복한 상태이다!
2.비전과 이미지:
일단 쿤달리니가 각성된다면 마음에서 출현하는 많은 다양한 비전들이 있다.
수많은 쿤달리니의 수행자들은 차크라 영시와 기타 다양한 형태의 비전들을
기록해놓았다.
어떤 비전들은 예언적인 지식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아니기도 하다.
예전에 나에게 발생하였던 가장 인상적인 비전은 온몸에 흰옷을 입은
사랑스러운 여성과 달콤한 사랑을 부드럽게 표류(wafting)하는 비전이었다.
나는 그녀의 형상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피부의 감촉을 느끼며
그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가장 달콤한 장미처럼 냄새를 풍겼으며 더욱 우아하고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피부는 가장 부드러운 장미 꽃잎... 에테르성과 같았다.
어떤 감각적인 인상보다 더욱 실질적으로 나에게 느낌을 준 사람과 장소에 대한
다른 비전들이 있다.
수행자는 그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의
(신경)섬유로 그것들을 느낀다.
이런 비전들을 느낀 후 이것을 외부 세계의 인상들과 비교하면 외부세계
인상들은 마치 죽은 듯이 느껴진다.
또한 다소 많지는 않지만 더 많은 비전들이 수행자의 마음을 통해서 표류한다.
오랜 과거의 기억 속 이미지들, 사물, 사람, 책, 장소의 이미지들, 그리고
강렬하게 마음을 감동시키는 자연적인 장면들이다.
3.신성의 인식(Awareness)
처음 쿤달리니가 각성 되었을 때 나는 항상 신성에 가까이 있는 느낌이 있었다.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몇몇 (그리스도, 요가난다 등과 같은) 현존들을 제외하고,
나는 거의 그들에 대한 이름을 붙을 수가 없었다.
신성에 근접한 감각은 항상 편안했다.
4.과거의 모든 바램: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영혼 안의 어떤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이곳과
저곳에서 물질적 대상들을 추구한다.
자동차, 집, 섹스 등.
설사 그것이 허망한 시도로 끝난다 할지라도 아주 자주 추구한다.
그런데 쿤달리니가 각성되는 동안 내가 경험한 가장 현저한 느낌들 중 하나는
이것이 내가 예전에 소망했던 모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밖에 어떤 것을 원할 때마다 그것은 단지 감정의 대용물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쿤달리니 각성을 통해 수행자 영혼 안에 있는 어떤 공허감이 완전히 충족된다.
5.마음의 정화, 융합 그리고 확장:
쿤달리니가 각성하기 전 그 수행자가 얼마나 종교적이고 순수한지에 상관이 없다.
나중에, 쿤달리니가 실제로 시작되면 수행자의 마음은 깨끗하게 정화된다.
정화되는 그 느낌은 진정으로 순수하다.
수행자가 쿤달리니를 경험하고 있을 때, 그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종교
신도들이 자신의 올바른 순결을 싹 틔우기 위해서 지겹도록 노력하는
달콤한 선량함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된다.
그 같은 종류의 선량함은 진짜 영성의 길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순결과 비교할 때
모조품으로 느껴진다.
신성(divine)이 마음의 정화를 완성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소위 심리학자들에게
알려진 *융합(integration)(3)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융합은 영적인 길의 기초적인 부분이다.
융합은 불쾌한 과거 경험, 해결하지 못한 기억들로부터 에고가 자신의
보호하기 위하여 세워 놓았던 장벽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융합은 과거경험을 완전히 기억(자신의 잠재인상, 삼스카라를 이해)할 때
발생한다.
융합의 과정은 쿤달리니 에너지가 없는 것보다는 함께하였을 때 휠씬 더 쉽게
수행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내면에는 깊이 숨겨진 것(잠재인상과 집착)들이 있으며
마음은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저항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해탈(enlightenment)을 경험하고 있는 동안 융합의 과정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더욱 위험할 수 있다.
** 역주:
여기서 말하는 인티그레이션-융합은 더 높은 자아 또는 근본자성으로 융합,
에고의식의 소멸을 의미한다.
마음은 수많은 세월 동안의 잠재인상과 행업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정당성과 신념의 추상적인 구조들이 파동으로 축적되어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과 같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부터 수용된 정보들은 즉시 마음에 축적된 과거의
인상과 결합하여 구체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표상작용을 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과 동일시 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표상작용 안에는 반드시 목적과 의도(집착)가 숨겨져 있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식이다.
이 에고의식은 항상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고 지시하고 계속 무언가를
충동질하면서 ‘나’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에고의식에서 이원론과 시간의 개념이 생성된다.
인티그레이션-융합은 개체라고 생각하는 에고의식이 거대한 자연,
근본자성(프라크리티)에 영원히 융합해 가는 해탈과정을 의미한다.
융합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행자는 공허한 말만 전달하는
어떤 선생을 만나게 되어서, 그런 다음에 그를 추종하게 되든지 또는 계획적
음모에 빠져들게 된다.
융합의 과정에 자신을 맡긴다면, 수행자는 나쁜 경험(악행 또는 카르마)에
반응하여 만들진 과거의 결정(또는 신념)에 의해 이끌리는 것을 멈추게 된다.
이 과정은 수행자 마음의 보호장벽(에고의식)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의 인식을
확장시켜준다.
6.직관적인 지식: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어떻게 아는가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쿤달리니 각성 동안 경험한 가장 강력했던 것 중의 하나는
스스로 드러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여기에는 더 이상 의문이 없다.
그것은 육체적 스포츠 또는 기타 어떤 즐거운 대상과 유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스스로 드러난 진리, 해탈수업을
내 존재의 모든 신경섬유로 알았고 또한 내게 깊은 통찰력이 주어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깊은 통찰의 느낌은 수년을 통하여 나와 함께 지속되어오고 있다.
7.신비한 힘들:
영적인 길에서 수행자가 알게 되는 것들 중 하나는 심령적(psychic) 힘
또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심령적 힘들의 기본적인 법칙 중 하나는 수행자가 그 힘으로부터 분리감을
느낀다면 심령적인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고의 장벽을 제거하고 마음을 확장시킴으로써, 수행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감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심령적 힘들의 또 다른 기본 법칙은 만약 수행자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심령적 힘을 사용한다면, 그는 에고를 찬미하는 것, 한정된 자기의식이며
자신의 자아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쿤달리니의 긍정적인 효과를 잃게 되어
영적 추락(spiritual fall)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절대적 의무는 수행자가 오직 신성의 의지(the spirit)에 의해서 지시 받을
때에만 특별한 힘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헤롯 왕이 그리스도에게 그가 신(神)임을 증명해보라고 말했을 때,
그리스도가 헤롯 왕의 즐거움/만족을 위해 그의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8.사랑과 보호:
내가 쿤달리니 상승을 경험하고 있을 때, 나는 항상 사랑 받고 보호되는
깊은 안락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신성과 매우 깊은 로맨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항상
모든 해로운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일일이 보살펴 주는 것 같았다.
참으로,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유일한 해로움은 나의 이기적인 동기에서
기인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는 동안, 이런 사랑과 보호감은 공포감을 제거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쿤달리니 각성의 위험
정의하자면 쿤달리니는 높은 에너지 상태이다.
모든 높은 에너지 상태- 만약 그 에너지가 움츠러든다면-는 부작용,
에너지 움츠림 증상(withdrawal symptoms)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력은 보편적으로 안정된 높은 에너지 상태이다.
만약 생명력이 마치 임종을 앞둔 노인처럼 움츠러진다면,
육체는 노쇠해지고 약해지며 질병을 얻게 된다.
성적(性的) 경험은 매우 불안정한 높은 에너지 상태이다.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면, 성적 에너지는 움츠러들어 피로감, 무력감을 느끼고
잠시 성적 흥미를 잃게 된다.
일상생활의 활력(적어도 어린 시절에는)은 일반적으로 적절히 안정된
높은 에너지 상태이다.
하루가 끝나는 저녁에 낮의 활력이 움츠러든다면, 피로와 수면이 그 결과이다.
에너지의 움츠러듦에 의존하는 어떤 에너지 상태, 특히 높은 에너지 상태는
움츠러듦의 증상(withdrawal symptoms)을 가지고 있다.
쿤달리니도 예외는 아니다!
움츠러듦(쿤달리니 에너지 하강)의 심각성은 쿤달리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했는가와 관계되는 것 같다.
만약 쿤달리니가 각성되어 단지 며칠 동안만 지복을 느끼고 난 후
쿤달리니가 닫힌다면, 아마도 수행자는 며칠 동안만 우울증 또는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쿤달리니가 몇 주 동안(3주 이상) 각성 되었다면, 수행자는 아마도
며칠에서 일주 또는 그 이상 동안 지속되는 영적 추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적 추락(Spiritual Fall)의 신호와 증상은 다음과 같다:
① 마음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상실.
② 시간 경과에 따라 커지는 공포감.
③ 시간경과에 따라 증가하는 정신적 번뇌 또는 고통의 느낌.
④ 혼란과 단기기억의 감소.
⑤ 억눌린 잠재인상 또는 욕구와 직접적이고 심각한 대립 그리고
아마도 지속적인 내적 투쟁 또는 불화(worse)에서 발생될 수 있는
자아개념의 상실.
이러한 것들 모두는 심리학적인 움츠러듦의 증상들이다.
나는 의사가 아니지만, (현대의학에서 다룰 수 없는)정신적 쇼크와 관련된
증상을 다루는 사람이다.
나는 육체적 움츠러듦의 증상들(떨림, 정신착란, 발한 등)과 관련된
어떠한 증상들도 결코 느껴보지 못했다.
만약 수행자가 이것을 견디어낸다면, 대부분의 이런 증상들은 며칠 동안
지속되다가 사물이 안정되듯이 점진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내 생각으로, 건강이 약한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나쁜 영적 추락을
견디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조숙한 영적 추락(4)은 수행자를 육체적으로 어렵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견디어낸다면, 그 수행자는 아마도 주기적인 불안감으로
남겨질 것이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쿤달리니는 어떤 심리학적 장애물을
통해서 그 자체를 소각하려 할 것이다.
** 역주:
조숙한 영적 추락에 관해 소개된 책으로 고피 크리쉬나의 “쿤달리니”가 있다
(이 책은 고려원에서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이 책은 서구에 쿤달리니를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피 크리쉬나가 겪은 쿤달리니 영적 경험과 위험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잠재의식에서 떠오르는 인상들에 매우 저항하였으며
그에 따르는 고통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따라서 쿤달리니 수행자들에게 인티그레이션, 즉 마음의 정화와 융합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것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즉시, 나는 어느 누구도 영적 추락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위에서 설명한 것은 쿤달리니에 관한 지식의 특수성이 왜 수세기 동안
비전으로 전수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대답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쿤달리니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공개되어 왔던 지식은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어 왔다.
전통한 영적 스승으로부터 해탈을 원하는 수행자들은 입문식과 수년 동안
훈련을 겪어야만 했다.
이 절차는 수행자가 물질계의 어떠한 것보다 진정으로 더 해탈을 원하는가
그리고 영적 추락이 그 스스로 발생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마음이 정화되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준비가 되기 전 쿤달리니가 각성되는 것을 조숙한 각성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쿤달리니가 닫히는 이유는 그 에너지가 척추를 따라서
잘 진행시키지 못하는 무지 또는 그것을 진행시킬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잘 진행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은 강력하게 억눌린 사건
(불쾌한 과거의 기억이나 잠재인상)들을 관찰하는 데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잠재의식에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잠재의식적 마음은 불쾌한 기억과 고통의 대체물로 이전에
즐거움을 제공했던 외부의 물질적 대상을 사용한다.
융합은 쿤달리니 경험의 기본적인 부분이다.
어떤 자극적인 에너지와 같이 쿤달리니는 억제된 심리적 욕구들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수행자는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했던 어떤 물질적 집착들을
기꺼이 내려 놓아야 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수행자가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기 전에 먼저 이런 억압된
심리적 욕구와 집착을 융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만약 수행자가 빛과 소리 기기(세션)의 사용자라면, 쿤달리니를 닫히게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함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방법은 아주 쉬운 방법이지만, 해탈(enlightenment)을 도와주는
어떠한 테크닉(전통적인 수행법을 포함) 역시 해탈을 제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쿤달리니 각성 후에 섹스를 할 수 있을지 염려한다.
인도에는 남편 또는 아내인 해탈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섹스를 했다.
나의 이해로 볼 때 섹스는 쿤달리니 상승을 방해한다.
아마도 섹스가 쿤달리니를 멈추게 하는 유일한 방식은 클라이막스에서
자신을 잃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지점까지는 수행자가 더 이상 쿤달리니를 겪고 싶지 않다는 결정을
내리면 자신 의지로 쿤달리니를 닫히게 할 수 있다.
적어도 초기진행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는 최고 주권자이다.
설사 쿤달리니와 같은 강력한 힘이라 할지라도 저항하겠다는 결정한다면,
자신의 의지로 쿤달리니를 닫히게 할 수 있다.
나는 쿤달리니의 효과를 설명했다.
조금이라도 이런 효과를 원치 않는다면, 그는 이 힘을 각성시킬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영적 추락에 대해 설명을 했다.
수행자가 이런 위험을 원치 않는다면, 그는 쿤달리니 각성에 관하여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쿤달리니를 제쳐 두고 당신의 삶과 함께 가라.
그러나 만약 당신이 삶의 깊은 가치, 삶의 활기, 영적, 정신적 진화,
각성과 해탈을 만들어내는 어떤 것을 추구한다면, 쿤달리니 경험은 당신에게
필요한 길이다.
이런 것이 수 세대를 통해서 쿤달리니의 수행자들이 겪어왔던 위험들이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그와 같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이에 대한 많은 희소식이 있다.
영적 추락의 현상 모두는 아닐지라도 조만간 빛과 소리 세션을 사용하여
영적 추락을 전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영적 추락에 의해 악화된 심리학적 조건들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보다 진보된 융합-인티크레이션 수행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내가 위에서 설명한 것을 겪을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방법과 영적 추락을 멈추게 하는 방법에 대한
완전한 지침 내용을 어웨이킹 마인드1에서 설명했다.
쿤달리니 각성시키는 법
자연적인 방법
이 방법이 쿤달리니를 각성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쿤달리니를 자연적으로 각성하기 위하여, 두 가지의 요소가 필요하다.
수행자는 깊은 명상적 트랜스 상태에 진입할 수 있어야 하며 수행 시
쿤달리니가 자연적으로 각성되기 위하여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음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취된다.
이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깊은 명상적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누워있는 동안, 코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라.
호흡하는 동안 너무 자극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빨리 호흡하지 마라.
호흡하는 동안 부드럽게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라.
만약 마음이 배회하거나 깊은 호흡으로 중단된다면, 자신을 강제하지 말고
곧바로 다시 시작하라.
마침내, 수행자는 트랜스 상태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누워 있는 동안 이 훈련으로 쿤달리니를 상승시키기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훈련은 트랜스 상태에 진입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아주 중요하다.
*트랜스 상태(5)는 항상 실제로 경과한 시간 보다 더 적은 시간이
경과한(또는 모든 것이 아주 서서히 움직이는 느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트랜스 상태의 다양한 깊이의 정도가 있다.
때때로, 수행자는 트랜스 상태에 있는 동안 깨어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동안, 시간은 마치 정지되어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때때로, 수행자는 트랜스 상태에 있는 동안 깨어있지 못할 것이다.
이 때 수행자는 일종의 “잃어버린 시간(missing time)”과 같이 경험될 것이다.
** 역주:
서구에서 트랜스 상태라는 용어는 변성의식 상태 또는 최면적 준환각 상태라는
용어와 자주 혼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 상태는 전통적으로 선정 또는 삼매 이전의 미도지정 상태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제임스만은 깊은 트랜스 상태를 “무시간(no time)” 상태로 묘사하고
있다.
만약 어떤 수행자가 호흡을 통해서 깊은 트랜스 상태에 도달한다면
아마도 그는 “무호흡” 상태를 먼저 지각하게 될 것이다.
이 상태의 특징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변형으로 묘사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초기 트랜스 상태는 신체의 부양과 침잠, 회전과 같은 감각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깊은 트랜스 상태에 진입함에 따라 강한 감각적 지각의 변형보다는
감각기관의 둔감 또는 마비증상과 같이 느껴진다.
이 때 모든 외부 자극은 느려지게 지각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며
마침내 신체감각이 완전한 상실된다.
그러면 외부자극에 혼란을 느끼지 않게 되는 마음의 상태전변, 오직 한 생각에
일관할 수 있는 전념 상태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요가에서 말하는 제감상태이다.
요가 수트라에 의하면, 완벽한 제감 상태에 도달한 후 다라나, 디야나,
사마디 상태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삼야마(일관된 집중 상태 또는 정념)을
얻게 된다고 묘사되어 있다.
일관된 집중 상태(삼야마)는 그 집중 대상에 따라서 유체이탈, 쿤달리니,
또는 기타 여러 초능력이 얻어지기도 하며, 그 힘을 마음의 작용,
특히 삼스카라와 행업 그리고 자아의식이 만들어내는 번뇌의 원인에 집중함으로써
무지를 극복하고 해탈할 수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일단 누워서 하는 트랜스 상태의 유도 훈련을 마스터했다면, 수행자는 할 수
있는 한 등을 곧게 세우고 좌정한 상태를 취한다.
그러면 쿤달리니의 훈련을 수행할 준비가 된 것이다.
다음의 테크닉은 훈련하는 동안 너무 애쓰거나 노력하지 말고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에서 그것들을 실행하라.
필요하다면, 전화 코드를 뽑아 놓고 침대에 아이들을 재워라!
소위 “콧구멍 교대 호흡(alternate nostril breathing)” 이라 불리는
요가 호흡 테크닉 훈련으로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콧구멍 교대호흡법은 다음 방법으로 수행된다.
오른쪽 손바닥을 턱에 대고 세 번째 중지를 미간(이마)에 댄다;
필요하다면 팔꿈치를 책상에 대도 좋다.
약지(새끼손가락)로 왼쪽 콧구멍을 가볍게 눌러 막고 오른쪽 콧구멍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 다음 바로,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천천히 왼쪽 콧구멍으로
호흡을 내쉰다.
이 번에는 엄지 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을 통하여
숨을 들이 마신다.
마지막으로, 약지로 왼쪽 콧구멍을 막고 오른쪽 콧구멍을 통하여 숨을 내쉰다.
자신의 마음이 명료해지고 이완될 때까지 이 과정을 몇 번이고 계속 되풀이 하라.
마음이 고요해지고 이완되었다면, 손을 무릎 또는 책상에 기대고 코를 통하여
천천히 깊은 호흡으로 시작하라.
마침내, 수행자는 명상적 트랜스 상태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만약 수행자가 이 호흡 훈련으로부터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면
제3의 눈 (아즈나) 또는 정수리(사하스라르) 차크라가 각성 될 것이다.
수행자는 마음 안에서 빛의 밝은 섬광을 볼 것이며, 즉시 트랜스 상태로부터
빠져 나오게 되어 엄청난 지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위의 훈련을 수행하는 동안, 수행자는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침대의 한쪽 또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앉아서 이완하라.
자신의 호흡을 빠르게 하거나 강요하지 마라.
만약 근육의 어떤 부분이 긴장되어있다면, 의식적으로 그것들을 이완하려고
노력하라.
교대호흡법을 실행하는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이
고요해지도록 강요하지 마라.
개인적으로, 나는 아래의 인공적인 방법을 휠씬 더 좋아한다.
이 방법은 수행자의 정신적 상태를 보다 더 통제할 수 있으며,
영적 추락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치료가 가능하다.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쿤달리니를 각성시키는 방법은 육체적 손상을 입든지
또는 실패하게 되든지 둘 중 하나이다.
이것은 수행자가 트랜스 상태에 있을 때 수행자 내부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는가, 얼마나 등을 직각으로 세웠는가, 그리고 얼마나 깊은 트랜스
상태에 도달했는가에 의존한다.
인공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수행자는 자신의 에너지 상태를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적인 방법은 컴퓨터, 빛과 소리 마인드머신, 또는 카세트 플레이어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인공적인 방법
쿤달리니는 빛과 소리 세션을 사용하여 쉽게 각성 된다.
사실 이것은 쿤달리니 각성에 필요한 빛과 소리 세션들의 진면목 중의
하나일 뿐이다.
빛과 소리 세션 원리는 아주 단순하다.
수행자가 실행할 것이라곤 세션을 사용하여 매우 깊은 트랜스 상태에
자신을 몰입하고 나서 마음을 각성시키는 것이 모두이다.
빛과 소리 세션을 사용하여 수행하는 것이 어느 방법보다 쉽다.
이와 같은 작업은 트랜스와 같은 상태가 에고의 장벽을 제거하고
빛과 소리 자극이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트랜스 상태는 쿤달리니의 자물쇠를 풀고, 빛과 소리자극은
그 문을 여는 것이다.
문이 열린 후 그것은 수행자의 척추를 따라서 상승한다.
그 세션은 자동적으로 쿤달리니를 각성시킬 것이다.
하지만, 수행자는 쿤달리니 상승에 자신을 맡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다음의 주파수는 해탈 세션(Enlightenment Session)에서 사용되는 주파수이다.
1 & 3단계:
왼쪽 귀 오른쪽 귀 상쇄주파수
피치주파수 257hz 250hz 7hz
피치주파수 236hz 243hz 7hz
2단계:
피치주파수 261hz 254hz 7hz
피치주파수 233hz 240hz 7hz
1 & 3단계는 트랜스 상태를 제공하며, 2단계는 쿤달리니 자극을 제공한다.
** 역주:
여기에 설명된 주파수는 쿤달리니 세션을 구성하는 핵심 주파수이다.
이 주파수가 하나의 세션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보조적인
주파수와 세션이론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의 세션 창조는 사용자의 개인적인 특성과 빛과 소리에 얼마나 익숙해진
사용자인가에 따라서 세션구성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먼저 사용자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의 이완 주파수가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고려해야 하고, 그 다음 트랜스와 쿤달리니 자극 주파수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극시킬지, 그리고 세션의 총 시간 등을
결정해야 한다.
쿤달리니 자극 주파수는 사용목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공명방법이 또한 약간씩 달라질 수도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주파수를 분석해보면, 정수리 차크라 주파수(약 250hz)의
피치주파수를 사용하여 명상 주파수인 7hz상쇄 값을 조화롭게 적용한 이론이다.
여기에서 모든 피치 주파수의 직선상쇄 값은 7hz이다.
하지만 1 & 3단계에서 양 피치의 교차 상쇄 값은 7의 정배수인 14hz
그리고 2단계에서는 3배수인 21hz의 상쇄 값을 창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제임스 만의 쿤달리니 세션은 그 구성이 매우 논리적이고 조화롭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는 자극 주파수가 꼭 수학적인 조화법칙만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행자가 이 세션을 성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세션시간, 파형형태, 듀티 사이클, 볼륨, 필터, 정확한 훈련방법,
트랜스 상태를 얻지 못할 경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이 있다.
더불어 빛과 소리 세션을 사용해야 할 사람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사람,
다양한 주파수에서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효과적으로 세션을
작성하는 방법 등이 어웨이킹 마인드1에 설명되어있다.
서로 다르게 분리된 트랜스 상태 또는 쿤달리니 자극 상태(둘 사이의 간격)의
효과들은 이틀 후 점점 약화된다.
그 이후로, 그것은 수행자의 모든 에너지가 될 것이며 수행자는 쿤달리니를
진행시키든지 또는 쿤달리니에 저항하여 닫게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다음 단원은 쿤달리니를 진행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쿤달리니를 타는 방법
쿤달리니 각성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수행자 자신이 항상 스스로 결정한다.
쿤달리니의 대가는 매우 단순하다.
쿤달리니의 지복 효과를 느낄 때마다 단순히 그것에 자신을 몰입하는 것뿐이다.
이 말은 더도 덜도 아닌, 신성(Spirit)에 완전히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와 같다.
쿤달리니 수행자들에게 맨 처음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수행자 자신이
쿤달리니 안에 존재하고 그것에 몰입하는 것이다
(마치 극장에서 재미있는 영화에 자신을 몰입하듯이).
또한, 자신의 영혼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면 단순히 그것을 따르라.
어떤 해로운 것이 요구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쿤달리니의 기본적인 대가는 수행자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쿤달리니 안에서 에고를 잃고 쿤달리니 현상과 완전히 결합하는 것이다.
신성에게 바쳐라, 그것이 신성의 의지이다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당신이 원하는 것>).
그것은 그와 같이 단순하다.
결국, 수행자는 완전한 자각(통합적인 집중과 인식:full awareness)을
가로막는 어떤 물질적 바람(욕망) 또는 집착을 풀어 놓도록 요청 받을 것이다.
수행자는 점차 알게 될 것이다.
“나는…이다” 그리고 나는…을 바란다” 란 생각은 원래 없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당신은 원한 것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결어
쿤달리니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수행자의 삶을 영원히 변형시킬 수 있다.
쿤달리니는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영적인 각성이다.
그것을 각성하는데 위험이 없지 않지만, 삶에서 (그것 외)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수행자에게 경험될 가장 명백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나는 쿤달리니를 경험했던, 경험하고 있는, 경험하게 될 사람들에게
조언으로서 이 자서전적인 글을 썼다.
이것은 쿤달리니 여행에 관하여 생각하는 수행자들에게 정직한 정보로서
그리고 진지한 수행자들에게 하나의 참조 자료로서 쓰여졌다.
나는 영적 여행에서 당신이 최상의 모든 것을 얻길 바란다.
'남성 강화 기공수련 > 탄트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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