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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氣) 열풍

김동수 2017. 12. 4. 19:21
일본의 기(氣) 열풍
2005.02.18, 이부환
 



일본의 기(氣) 열풍

 

일본도 동양권에 속하여 기(氣)에 대한 개념이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1994년에 일본에서 발간한 “기(氣) 대사전”을 보면 기공 관련 단체가 약 250여 개이며 지부를 포함하면 5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기(氣)와 관련한 서적의 종류도 1996년 현재 약 200여 종이 넘는다는 집계가 나와 있다.

일본에서 기(氣)에 대해 학계가 관심을 보인 계기는 1988년에 쓰쿠바에서 열린 “기(氣)와 인간과학” 심포지엄이다. 이 심포지엄을 통하여 당시 중국에서 열풍처럼 일고 있었던 기(氣)에 대한 연구의 종합적인 성과를 일본에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 심포지엄이 열린 배경을 살펴보면 동양철학과 융 심리학을 전공한 유아사 야스오(湯淺泰雄)가 큰 역할을 하였다.

“기(氣)와 인간과학”이라는 주제로 5일 동안 열린 “일ㆍ중(日ㆍ中) 우호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주최는 요미우리 신문사였고 후원은 과기청과 외무성이었다. 과기청이 이 심포지엄을 후원한 것은 그 당시 과기청 장관이었던 이또(伊藤宗一郞)의 지원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일본 측의 의도는 10여 년 이상 진행해 온 중국의 기(氣)에 대한 연구결과를 모두 흡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심포지엄 논문집은 국내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 발간하였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중국 측의 연구 결과는 상당수가 과학적 측정 데이터를 기초로 한 것들인데 반하여 일본 측의 발표 논문들은 반 정도가 기공과 관련된 생리적 변화에 대한 것들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고전적 기 개념에 대한 사변적 논의를 내용으로 하는 것들이다. 일본에는 뛰어난 기공사가 없었기 때문에 실험 연구 논문들이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심포지엄이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기(氣)에 관한 연구 내용이 초보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과학적인 연구를 시도하는 학자로는 당시 전기통신대학교에 있었던 사사키 시게미(佐佐木茂美)와 동경전기대학교의 마치 요시오(町 好雄) 정도였다. 심포지엄 이후로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중국의 인체과학회를 본따 일본도 1991년에 인체과학회를 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과학기술청은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의 ‘야마모토 미키오’(山本幹男)를 책임자로 하여 1995년 9월부터 5년에 걸쳐 “다양(多樣)동시계측을 이용한 생체기능해석법의 연구”과제를 지원하였다. 연구비는 5년 간 약 9,000만 엔(약 10억원)이었으며 연구내용은 측정 가능한 모든 인체 생리신호를 이용하여 기공사가 초능력을 발휘할 때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일본의과대학, 동경전기대학, 일본전기주식회사(NEC) 등의 연구진을 포함하여 약 20여 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였고, 이어서 “국제 생명정보과학회” (International Society of Life Information Science)를 창립하였다.

1단계 연구는 2000년 3월에 종료하였고 그 뒤부터는 2단계 사업으로 “시행적 연구 프로그램-신 패러다임의 창성(創成)을 향하여”라는 연구과제를 시작하였으며 주요 연구내용은 잠재능력의 물리적 생리학적 실증적 연구, 전통적 건강법과 심신단련법의 인체 과학적 연구, 정신심리요법에 관한 기초적 연구라는 3개 분야로서 총 9개 과제를 진행 중이다.

야마모토는 그 동안의 연구결과에서 인간의 잠재능력을 전문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연구소의 설립 필요성을 느끼고 “잠재능력과학연구소”의 설립을 과기청에 건의하였다.